샤토 앙젤뤼, 종의 역사를 넘어선 생테밀리옹의 별
생테밀리옹의 종소리, 샤토 앙젤뤼의 시작
보르도 와인의 세계에서 생테밀리옹(Saint-Émilion)은 독특한 매력을 지닌 지역입니다. 그 중에서도 샤토 앙젤뤼(Château Angélus)는 단연 눈에 띄는 존재입니다. 포도밭에서 들려오는 아침, 정오, 저녁의 세 차례 종소리가 이름의 유래가 된 이 샤토는 1782년부터 보르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가문 중 하나인 부아르 드 부아르드(Bouard de Laforest) 가문에 의해 운영되어 왔습니다. 8대에 걸친 가족의 열정과 헌신은 이곳을 단순한 와인 생산지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했습니다.
앙젤뤼의 이야기는 전통에 대한 깊은 존중과 혁신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이 공존하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당시 수장이었던 위베르 드 부아르드(Hubert de Bouard)의 노력으로 와인의 품질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고, 이는 곧 세계적인 명성으로 이어졌습니다. 그의 철학은 최고의 테루아를 표현하는 동시에, 각 빈티지의 특성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데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1996년 생테밀리옹 그랑 크뤼 클라쎄(St-Émilion Grand Cru Classé) 분류에서 최고 등급인 '프르미에 그랑 크뤼 클라쎄 A(Premier Grand Cru Classé A)'로의 승격이라는 결실로 이어졌습니다.
변화의 물결: 2022년 생테밀리옹 분류와 앙젤뤼의 선택
그러나 최근 생테밀리옹 와인계에는 큰 변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2022년, 10년마다 개정되는 생테밀리옹 공식 분류에서 예상치 못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샤토 앙젤뤼와 샤토 슈발 블랑(Château Cheval Blanc)이 자발적으로 분류 탈퇴를 신청한 것입니다. 이는 클라쎄 A의 또 다른 명문인 샤토 오존(Château Ausone)과 클라쎄 B의 샤토 라 가플리에르(Château La Gaffelière) 등과 함께 분류에 대한 재심사 과정에서 벌어진 복잡한 법적 공방의 여파 속에서 나온 결정이었습니다.
이 결정은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유서 깊은 샤토들의 행보에 주목했습니다. 앙젤뤼 측은 이 결정이 분류 제도의 불확실성과 법적 논란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와인의 품질과 가문의 철학에 집중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마치 LVMH가 2022년 조셉 펠프스 빈야드(Joseph Phelps Vineyards)를 인수하며 "돔 페리뇽, 샤토 디켐, 샤토 슈발 블랑과 같은 역사적인 와이너리의 신뢰할 수 있는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한 것과 맥을 같이합니다. 즉, 분류 등급에 매이기보다는 자유로운 창작과 최고의 품질 유지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셈입니다.
앙젤뤼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
앙젤뤼의 위대함은 단순한 등급이 아닌, 그를 이루고 있는 구체적인 요소들에서 비롯됩니다. 포도밭, 포도 품종, 그리고 독특한 양조 철학이 조화를 이루어 그 독보적인 스타일을 창조합니다.
- 테루아(Terruar): 생테밀리옹의 남쪽 경사지에 위치한 앙젤뤼의 포도밭은 석회암 기반의 토양과 점토, 모래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이는 특히 메를로와 카베르네 프랑에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합니다.
- 포도 품종: 전통적인 생테밀리옹 블렌드에 카베르네 소비뇽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선구자 중 하나입니다. 이는 와인에 구조감과 장기 숙성 능력을 더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습니다.
- 양조 철학: 최첨단 시설과 전통 방식을 결합합니다. 작은 크기의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를 사용해 포도밭의 각 구획(파르셀)을 따로 발효하여 정밀한 블렌딩을 가능하게 합니다.
앙젤뤼의 와인 라인업은 그랑뱅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구성됩니다.
| 와인 이름 | 주요 특징 | 포도 품종 비율 (예시) |
|---|---|---|
| 샤토 앙젤뤼 (그랑뱅) | 메인 와인. 강력하면서도 우아함, 깊은 과일 향과 미네랄 감이 조화를 이룸. 장기 숙성 가능. | 메를로 60%, 카베르네 프랑 40% (빈티지에 따라 변동) |
| 르 카르릴 드 앙젤뤼 (Le Carillon d'Angélus) | 두 번째 와인. 부드럽고 접근성이 뛰어나며, 일찍 즐길 수 있는 매력을 지님. | 메를로가 높은 비율로 블렌딩됨 |
| 노.3 드 앙젤뤼 (No.3 d'Angélus) | 보르도에서 생산되는 와인. 가볍고 신선한 스타일로 일상에서 즐기기 좋음. |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등 |
시장에서의 위치와 투자 가치
분류 탈퇴라는 이례적인 결정에도 불구하고, 샤토 앙젤뤼의 시장 가치와 명성에는 큰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 결정이 가진 역사적 의미와 샤토 자체의 확고브란 품질에 대한 신뢰가 시장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앙젤뤼는 이미 오랜 기간 동안 최상급 보르도 와인 컬렉터와 투자자들에게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특히 뛰어난 빈티지(예: 2005, 2009, 2010, 2015, 2016, 2018, 2019년)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안정적으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앙젤뤼의 가치는 단순한 투자 대상을 넘어서 있습니다. 이 와인은 보르도 오른편 강(Right Bank)의 힘과 세련됨을 동시에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예시입니다. 풍부한 검은 과일, 트뤼프, 초콜릿, 향신료의 복잡한 아로마, 그리고 탄탄한 탄닌과 신선한 산도가 균형을 이루는 맛은 한 번 경험하면 잊히지 않습니다. 이러한 품질의 일관성이야말로 등급을 떠나 앙젤뤼를 영원한 '프르미에 그랑 크뤼 클라쎄'로 만드는 진정한 이유입니다.
샤토 앙젤뤼의 미래: 종소리는 계속된다
2022년의 분류 탈퇴는 앙젤뤼의 종말이 아닌, 새로운 장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읽혀야 합니다. 현재는 스테파니 드 부아르드(Stéphanie de Bouard)가 8대 수장으로서 가문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의 지도 아래 샤토는 지속 가능한 농법과 정밀 농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포도밭의 미세한 부분까지 이해하고, 각 파르셀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데 집중하는 것이 미래 전략의 핵심입니다.
샤토 앙젤뤼의 이야기는 전통과 혁신, 가족의 신념과 예술적 도전이 빚어낸 결과물입니다. 공식 분류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그들이 포도밭에 부은 피와 땀, 그리고 수 세대에 걸쳐 전수된 지혜는 변함이 없습니다. 아침, 정오, 저녁을 알리는 종소리가 그치지 않듯이, 샤토 앙젤뤼는 앞으로도 생테밀리옹의 언덕에서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한 여정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그 가치는 등급이 아닌, 병 속에 담긴 순수한 우수성만으로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그랑 크뤼'의 의미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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