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전통이 빚은 귀한 단맛, 슐로스 고벨스버그 리슬링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 2013
와인의 세계에서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Trockenbeerenauslese, 이하 TBA)'라는 이름은 단순한 등급을 넘어선, 하나의 예술품을 의미합니다. 극도로 늦은 수확, 귀부병(Botrytis cinerea)의 정교한 작용, 그리고 한 알 한 알 손으로 조심스럽게 건포도를 따는 엄청난 노동력이 합쳐져 탄생하는 이 와인은 독일어권 와인 산지가 선사하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스트리아 캄프탈(Kamptal) 지역의 명문, 슐로스 고벨스버그(Schloss Gobelsburg)의 2013년 리슬링 TBA는 천년의 역사를 지닌 포도원이 빚어낸 경이로운 균형미를 보여줍니다.
슐로스 고벨스버그: 천년을 이어온 테루아의 수호자
슐로스 고벨스버그의 역사는 10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랜 세월 동안 수도원 소유로 남아 전통과 품질을 고수해온 이 와이너리는 1996년부터 미하엘 모어(Michael Moosbrugger)와 빌리 킵링거(Willi Bründlmayer)에 의해 관리되며 현대적인 감각과 전통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들의 철학은 '테루아의 표현'에 있습니다. 포도원의 특성, 즉 토양, 기후, 지형이 와인에 그대로 투영되도록 최소한의 개입으로 포도의 본질을 이끌어내는 것이죠.
이러한 접근법은 그들의 리슬링에서 특히 빛을 발합니다. 슐로스 고벨스버그는 캄프탈 지역의 특급 포도원인 하일리겐슈타인(Heiligenstein), 가이스버그(Gaisberg), 렌츠(Lenz) 등을 소유하며, 각 포도원의 독특한 미네랄리티와 구조를 와인에 담아냅니다. TBA 와인은 이러한 테루아의 정점에 선 표현으로, 단순한 당도의 과시가 아닌, 복잡한 풍미와 생동감 있는 산도의 극적인 대비를 통해 장엄한 음악과 같은 경험을 선사합니다.
2013년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 균형의 예술
2013년은 오스트리아에서 성장기간이 길고 서늘한 기후가 지속된 해였습니다. 이는 리슬링에게는 천재일우의 조건으로, 서서히 익으면서도 선명한 산도와 정교한 풍미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귀부병은 이러한 조건에서 최적의 상태로 발전하여 포도에 집중된 당분과 복잡한 아로마를 만들어냈습니다.
슐로스 고벨스버그의 2013 TBA는 이러한 조건이 만들어낸 걸작입니다. 눈에 띄는 짙은 금색을 띠는 이 와인은 코를 가까이 가져가는 순간부터 그 풍요로움을 예고합니다.
- 향: 플로럴한 꽃잎의 향기가 먼저 느껴지며, 그 뒤를 이어 잘 익은 살구, 복숭아, 꿀, 말린 무화과, 오렌지 껍질의 풍부한 아로마가 층층이 피어오릅니다. 미네랄의 시원한 느낌이 전체적인 향기를 정교하게 다듬어줍니다.
- 맛: 입 안에 머금는 순간, '아주 높은 당도'가 느껴지지만, 그것이 단순히 달콤함으로 머물지 않습니다. '높은 산도'가 당도를 단번에 잡아 올려 놀라울 만큼 생기 있고 깨끗한 여운을 남깁니다. 바디감은 풍부하고 오일리한 질감을 지니며, 꿀, 캐러멜라이즈된 시트러스, 미네랄의 맛이 긴 여운으로 이어집니다. 이 극단적인 당도와 산도의 대립이 만들어내는 '밸런스'가 이 와인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이 TBA는 단독으로 디저트 와인으로 즐기기에 완벽하지만, 푸아그라, 강한 블루치즈, 또는 약간의 소금기 있는 견과류와의 페어링도 환상적입니다. 소량을 조심스럽게 따라, 각 모금 사이에 시간을 두고 음미하는 것이 이 와인의 모든 층위를 경험하는 길입니다.
슐로스 고벨스버그 리슬링 라인업 이해하기
슐로스 고벨스버그의 리슬링은 단순한 등급 체계를 넘어 포도원(테루아)에 초점을 맞춘 라인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TBA는 그 정점에 있지만, 다른 등급의 와인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발합니다. 아래 표를 통해 그들의 주요 리슬링 라인업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 와인 명칭 (등급/포도원) | 주요 특징 | 당도 수준 | 추천 페어링 |
|---|---|---|---|
| 리슬링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 (TBA) | 귀부병 감염 건포도, 수작업 선별, 최고 농축도, 복잡한 꿀/말린 과일 향, 높은 산도와의 극적 균형 | 매우 높음 (아주 달콤함) | 푸아그라, 로크포르 치즈, 디저트(타르트, 푸딩), 단독 음미 |
| 리슬링 아우스레제 (Auslese) | 늦은 수확, 일부 귀부병 가능, 풍부한 과일 향(복숭아, 살구), 좋은 산도 | 중간-높음 (달콤함) | 약간 매운 아시아 음식, 푸성귀 요리, 연한 치즈 |
| 리슬링 가이스버그 (Gaisberg) *Erste Lage(1급 포도원) | 화강암 토양, 우아하고 미네랄 감이 강한 스타일, 시트러스, 백복숭아, 긴 여운 | 드라이(Trocken) ~ 오프 드라이 | 생선 회, 해산물, 닭고기 요리 |
| 리슬링 하일리겐슈타인 (Heiligenstein) *Erste Lage(1급 포도원) | 사암과 현무암 토양, 강력한 구조감과 스파이시함, 익은 시트러스, 미네랄, 꽃향기 | 드라이(Trocken) | 구운 돼지고기, 향신료가 강한 요리, 버섯 요리 |
| 젝트 브뤼 리저브 (Sekt Brut Reserve) | 전통 방식(샴페누아) 스파클링 와인, 리슬링과 그뤼너 벨트리너 블렌드, 신선한 사과/배 향, 크리미한 거품 | 브뤼(드라이) | 아페리티프, 가벼운 전채요리, 해산물 |
한 병에 담긴 시간과 정성
슐로스 고벨스버그의 2013 리슬링 TBA를 마주할 때, 우리는 단순히 한 병의 와인이 아닌, 한 해의 기후, 천년 된 포도원의 흙내음, 귀부병이라는 자연의 기적, 그리고 그것을 최고의 순간에 포착하려는 인간의 예리한 판단력과 노동이 모두 합쳐진 결과물을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각 모금은 매우 진귀한 경험입니다.
이 와인은 현재도 충분히 매혹적이지만, 시간을 더해 장기적으로 보관한다면 그 복잡성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병 속에서 진화하며 더욱 부드러운 꿀, 카라멜, 허니드 너트의 풍미를 발전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한 기념일이나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축하하기 위해, 혹은 단지 와인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을 경험하기 위해 찾아야 할 와인입니다.
슐로스 고벨스버그는 그들의 모든 와인을 통해 테루아의 진실된 목소리를 전달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 2013 TBA는 그 목소리가 가장 장엄하고 화려하게 울려 퍼지는 순간을 포착한 기록입니다. 달콤함의 경지가 단순한 당도가 아닌 생명력 있는 산도와의 춤사위 속에 있음을 일깨워주는 이 귀한 와인은, 와인 애호가라면 한 번쯤 꼭 경험해봐야 할 필수 코스에 오를 만한 명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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